대전 여행, 사사롭고 소소하게
한규 | 조회 24531 | 공감 2659



 

 

 나는 대전에 삽니다. 일상의 근간은 수원과 서울에 있지만, 주말이면 꼭 대전에 오곤 합니다. 엄마의 집 밥, 안락한 잠자리, 똑딱거리는 전구색 스탠드 등이 있기 때문이죠. 나는 주말이면 대전을 여행합니다. 거창한 여행이 아니라 나의 일상을 한 바퀴 둘러보는 것이지요. 여행이란 결국 고의적으로 길을 잃었다가 다시 집에 돌아오는 것. 나에게 대전은 집을 잃을 필요도, 길을 헤맬 필요도 없는 일상의 여행지입니다. 나는 항상 여행에 대해 이런 생각을 합니다. 타자의 시선에서 혹은 관광객의 시선에서 하나의 공간을 바라보는 것은 여행이 아니라고, 그것은 단지 바라봄에 지나지 않는다고. 여행은 일상이 되어야만 합니다. 그 공간에서 밥을 먹고, 잠을 자고, 노래를 듣고, 책을 읽고. 그렇게 일상의 일부가 되어 오감으로 느낄 때, 그것이 진정한 여행이 되는 것입니다.

 

 나는 이번 주말에도 대전을 여행합니다. 내가 좋아하는 동네 카페 쉼에 가서, 아오이 유우를 닮은 연정누나에게 인사를 하고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읽습니다. 동네 어귀에 있는 대전 시립미술관에선 잘생긴 워홀 형의 자화상을 물끄러미 바라봐주고, 한밭 수목원의 만개한 개란 프라이 꽃 사이에선 내가 꽃인지 꽃이 나인지 잠시 헷깔려 합니다. 해가 질녘이면 대전의 하나 남은 달동네인 하늘동네로 향합니다. 통영의 동피랑, 부산의 감천동 문화마을 보다야 못하지만, 하늘동네는 내가 가장 사랑하는 벽화마을입니다. 나의 삶이 진하게 묻어있는, 내 일상이니까요.

 

 

 

 

 

 






 오늘은 나의 주말을, 사사롭고 소소한 대전 여행에 대해 이야기를 할까 합니다. 주말이면 으레 발걸음을 향하는 카페 쉼은 동네의 소박한 카페입니다. 일전에도 즐겁게 소개한 바가 있는 카페는 예쁘장한 사장님이 운영하고 있습니다. 카페는 3개의 테이블로 이루어져 있고, 하우스 룰즈와 어반 자카파가 흐르며, 맛있는 커피가 있습니다. 솔직히 나는 커피를 마실 줄 모릅니다. 아메리카노도 십센티의 노래가 좋아서 마실 뿐 그 맛을 온전히 알지는 못합니다. 하지만 커피를 모르더라도 쉼에서 마시는 커피가 맛있는 건 확실합니다. 붐비는 중에도 미소를 잃지 않는 연정 누나와, 바삭바삭한 허니 버터 브래드, 살가운 정이 있기 때문이죠.

 

 카페 쉼 책장 한 켠에는 '카페 쉼 여행 앨범'이라하여 누나가 싱가포르에서 찍은 사진들이 하나의 폴더로 정리되어 있습니다. 문득 나도, 지난 공팔 년도에 다녀왔던 싱가포르의 풍경들이 떠오릅니다. 수많은 관광지와 맛있는 먹거리들, 텍스 프리의 명품들과 드넓은 수영장. 내 머릿 속에 남은 기억은 이런 관광지의 모습이 아닙니다. 어느 허름한 호텔의 바닷가 벤치에 앉아 밤 늦게 친구 녀석과 수다 떨었던 순간. 칡흑의 밤 앞에서 나눴던 미래에 대한 고민들. 기억 속에 온전히 남은 그 녀석의 미소는 아직도 잊혀지질 않습니다.

 

 

 

 

 





 

 카페 쉼에서 끊임없이 수다를 떨고 나면 나는 으레 시립미술관에 향합니다. 최근에 막 마친 모네에서 워홀까지는 오랜만에 대전에서 즐길 수 있었던 괜찮은 전시전이었습니다. 나는 예술에 대해 아는 게 없는 사람이지만 적어도 어느 정도의 주관은 가지고 있습니다. 더군다나 삶의 궤적을 쫓았던 워홀에 대해서라면 말이지요. 워홀은 지나치게 솔직했습니다. 거짓과 위선과 허영으로 가득 찬 예술계에 속하면서도 그 예술계를 마음껏 비웃었죠. 'I have not seen a human does not progress illusions. Everyone has the own fantasy'.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만의 환상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그대와 나 또한 그럴 겁니다.

 

 

 

 







 그러고 나서 향하는 곳은 한밭 수목원입니다. 엑스포 시민 광장 옆에 넓게 형성된 수목원에는 다양한 식물군이 분포하고 있습니다. 계란 프라이 꽃과 작약, 노랗고 파랗고 빨간 꽃들의 향연은 그 어떤 풍경보다 아름답습니다. 여름 밤이면 이곳에선 색색들이 불빛이 빛나는 분수쇼가 열립니다. 무더운 여름을 맞아 아이들과 함께 나온 가족들을 볼 때면 알 듯 모르게 따뜻한 감상에 빠지곤 합니다. 나는 이곳에 많은 추억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곳을 함께 걸었던 이들, 함께 걸을 이들을 떠올리며 발 길을 돌립니다. 다음은 하늘동네입니다.

 

 

 

 

 






 일상 여행의 종착지는 언제나 하늘동네가 되곤 합니다. 대동 산 1번지에 위치한 하늘동네에 오르면 머릿속을 가득 채웠던 불필요한 생각들이 하나 둘 정리되곤 하거든요. 대동 하늘동네는 대전을 바라볼 수 있는 몇 안되는 장소입니다. 높은 달동네에 올라 해 질 녘의 대전을 바라보면 그 감동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하늘동네에 오르면 내가 살아왔던 집들이 모두 눈에 담깁니다. 중리동, 삼천동, 삼성동과 월평동. 22년을 함께했던 대전의 모습은 저물어가는 태양의 누런 미소에 함박웃음을 짓습니다. 하늘동네엔 일상과 여행이 공존합니다. 골목에 의자를 빼어놓고 앉아 수다를 떠는 할머니들, 동네 강아지에게 우르르 몰려가 밥을 주는 아이들, 그리고 그 풍경을 사진에 담는 출사객들. 모든 사람은 일상과 여행 사이에서 이곳을 추억할 것입니다.

 

 

 

 

 

 


 

 거창한 여행기가 아닌 일상 이야기입니다. 내가 주말을 보내는 방식이고, 나의 평범한 하루일 따름입니다. 하지만 나는 이런 것들이 유명 관광지의 풍광보다도, 그 장엄함보다도 훨씬 좋습니다. 사사로운 이야기가 가득 담긴 장소에선 추억을 찾고, 소소한 추억 속에선 일상의 기쁨을 발견하니까요. 나는 나의 일상을 사랑합니다. 나를 스쳐 지나가는 모든 사소한 것들 속에서 나는 여행을 시작합니다. 설레이는 여행의 초입에서 당신에게 묻겠습니다. 당신의 일상은 어떠한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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