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부안] 위도 띠뱃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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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부안군 위도면의 중심 섬인 위도(蝟島)는 해안선의 형태가 고슴도치를 닮았다고 해서 고슴도치 위(蝟)자로 하였다고 합니다.

위도는 허균의 '홍길동전'에서 꿈꾸었던 이상국인 율도국의 모델로도 알려질 만큼 한때는 풍요롭고 아름다운 섬이었습니다. 칠산어장은 남쪽으로는 전남 영광 앞바다의 안마도로부터 북쪽으로는 전북 고군산열도의 비안도에 이르는 넓은 지역이었습니다. 조기잡이가 한참이던 시절에 위도 파장금항 근처에 파시가 형성될 정도로 칠산어장의 중심지 였습니다.

그러나 1920년 절정에 달했던 조기잡이가 쇠퇴하면서 이러한 명성도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더우기 1993년 10월 10일에 위도 바다에서 일어난 '서해훼리호 침몰사고'로 292명이 목숨을 잃기도 하였고 2003년에는 방사성 처분장 설치를 부안군청에서 신청하여 확정되었으나 주민들과 환경운동단체들이 결사적으로 반대하여 무산시켰습니다. 이렇듯 위도는 최근 20세기 초부터 큰 풍파에 많이 겪었습니다.

 

위도의 관문인 파장금항에서 동쪽의 해안도로를 따라 차로 10분 거리에 대리(大里)마을이 있습니다. '위도 띠뱃굿'은 위도 앞바다에 조기가 넘쳐나던 옛 시절에 이 지역 어민들의 풍어와 만선에 대한 소망과 안전을 기원하던 풍습에서 나온것입니다.

대리마을에서는 해마다 음력 정월 초사흗날 풍어와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는 마을굿을 합니다. 오전에는 열두서낭을 모신 원당에 올라가 당굿을 하고, 오후에는 마을 앞 바닷가에서 용왕굿을 한 다음 바다에 띠배를 띄워 보내며 풍어를 기원합니다. 중요무형문화재 제 82-다 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원당은 위도에서 역사가 깊고 영험하기로 소문단 당입니다. '원당(願堂)' 이란 명칭은 '사람들이 바라는 소원을 빌고, 또 사람들이 비는 소원을 잘 들어주는 당'이라 해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즉, 원당은 바다를 삶의 터전으로 삼고 살아가는 뱃사람들의 풍어와 무사고를 기원하는 이 지역 어촌 신앙의 중심지 입니다.

원당굿은 원래 열두거리(열두석) 이었다고 하나, 지금 확인할 수 있는 굿거리는 성주굿, 산신굿, 손님굿, 지신굿, 서낭굿1(원당.본당서낭), 서당굿2(애기씨서낭), 서낭굿3(장군서낭), 깃굿, 문지기굿 등 모두 아홉거리 입니다.

무녀가 무가를 부를 때 반주자는 전문 악사가 아니라 풍물패 또는 마을 사람들 중에서 악기를 잘 다루는 사람들이 악사를 합니다.




무녀뿐만 아니라 마을 주민들도 원당에서 풍물굿을 합니다. 풍물굿은 마을 주민들이 위도띠뱃굿에 동참하도록 하는데 중요한 역활을 합니다. 또한 풍물굿은 굿에서뿐만 아니라 고기 잡으러 바다에 나가면서도 풍물을 싣고 나가 뱃사람들이 좀 더 흥겹게 일하며 고기잡이의 능률을 올릴 수 있도록 풍물을 쳤습니다. 




용왕굿이 끝나면 바다에 나가 수중고혼이 된 사람들에게 음식을 고루 풀어먹인다는 뜻에서 마을 앞 바닷가를 따라가며 줄발(가래밥)을 바다에 뿌립니다. 이 줄밥은 콩, 밥, 뜸부기를 고루 섞어서 만든 것 입니다.

이 때 선창자가 '가래질 소리', '에용 소리', '술배 소리' 등의 앞소리를 메기고 여러 사람들이 뒤소리를 하며 따릅니다.

 

어낭청 가래야 - 어낭청 가래야

어어어 가래로다 - 어낭청 가래야

이것이 뉘가랜가 - 어낭청 가래야

우리 부락에 큰 가래네 - 어낭청 가래야

우리 부락에 사람들이 - 어낭청 가래야

선창에 다 모였네 - 어낭청 가래야

줄을 스고 열을 지어 - 어낭청 가래야

가래밥을 옆에 끼고  - 어낭청 가래야

가래밥을 물에 느며  - 어낭청 가래야

빌어 보세 빌어 보세  - 어낭청 가래야

용왕님 전에 빌어 보세  - 어낭청 가래야

우리 부락 잘되라고  - 어낭청 가래야

용왕님 전에 기원하세  - 어낭청 가래야


줄 밥 뿌리기가 끝나면 풍물패가 풍물을 치며 뒤따르고 부녀자들을 비롯해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모두 행렬을 이루어 노래하고 춤추며 가래질 소리 뒤소리를 따라하며 띠배가 있는 마을 앞 광장으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누구나 따라할 수 있는뒤소리를 따라 저절로 어깨가 들썩이게 된답니다.




줄 밥 뿌리기가 끝나면 용왕제의 마지막 절차인 띠배 띄우기를 합니다. 띠배를 띄워 보내는 시간은 바닷물이 밀물에서 썰물로 변한 직후입니다. 올해는 3시반에 시작하였습니다. 이 때 띄워야만 띠배가 다시 마을로 돌아오지 않고 멀리 떠나기 때문이죠. 띠배는 이 마을의 모든 재액을 맡아 가지고가는 일종의 정화제 역활을 한답니다.
띠배를 매단 모선이 대리 마을을 뒤로 하고 먼 바다를 향해 떠나가고 있습니다. 배 안에서는 풍물이 계속되고 선창자가 '배치기 소리', '가래질 소리', '술배 소리' 등의 앞소리를 매기면 배에 탄 나머지 사람들이 후렴을 제창하면서 풍물소리에 맞추어 흥겹게 춤을 춥니다. 


예전에는 띠배를 끝고 가는 모선 외에도 대리마을이나 인근 마을의 배들이 오색 오방기를 휘날리며 마을 앞 바다로 따라 나와 띠배를 칠산 앞바다로 끌고 나아가는 것을 지켜 보았다는데 당시 수십 척이 모선을 에워사고 잔잔한 바다를 헤치고 나아가는 광경은 큰 장관이었다고 합니다. 올해는 모선 외에 촬영을 원하시는 분을 태운 한 대만 더 띄웠답니다.

마을로부터 멀리 벗어나 바다 한가운데에 이르면 모선과 띠배를 연결한 줄을 끊어 띠배를 망망대해로 띄워 보냅니다.

배에 탄 사람들은 띠배가 마을의 재액을 싣고 멀리 떠나기를 기원하고 각자의 소망도 기원하지요.


이제 칠산 앞 바다 망망대해에는 마을의 재액과 개인의 소망을 가득 담은 띠배만이 떠있습니다. 저도 멀어져가는 띠배를 보며 마음속에 품고 있던 개인적 소망과 가슴에 품고있는 불가능한 꿈을 띠배에 실어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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