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무주] 눈꽃, 바람 그리고 운무의 향현
불가능한꿈 | 조회 9433 | 공감 1271


무진장은 대한민국 대표 오지. 무주, 진안, 장수 지역을 일컷는다. 지금은 익산~포항간 고속도로가 개통돼 접근이 용이해졌지만, 노령산맥과 소백산맥 사이에 위치한 전북 무진장은 전통적인 시골 지역이다. 한 겨울이면 살을 에는 추위와 눈의 세계. 

사실 무진장(無盡藏). ‘무진(無盡)’이란 ‘다함이 없다’는 뜻이고, ‘장(藏)’은 창고를 뜻하니 글자 그대로 풀어보면 ‘다함이 없는 창고’라는 뜻이다. 이걸 불교에서는 ‘덕이 광대해 다함이 없음’을 설명하는 말로 쓴다. 뜻은 버리고 음만 빌려와서 전북의 지붕을 이루는 무주와 진안, 그리고 장수를 한데 묶어서 ‘무진장’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때의 무진장이란 두말할 것없이 첩첩산중의 오지를 말하는 것일 터다.


'덕이 많은 너그러운 모산’이란 뜻의 덕유산은 덕(德)만 많은 게 아니다. 눈도 많다. 최고의 눈꽃 여행지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덕유산은 남한에서 네 번째로 높은 명산으로 그 꼭대기인 향적봉은 해발 1,616m에 이른다. 지상의 삶과는 분명 다른 바탕색과 온도를 지녔다. 

높디높은 산이지만, 오르는 길은 그리 어렵잖다. 무주리조트 관광곤돌라가 해발  1520m 설천봉까지 20분만에 올라가 여행자의 산행을 대신해 주기 때문이다.





덕유산은 최고봉인 향적봉이 해발고도 1614m로 남한 땅에서 네 번째로 높다. 무주구천동에서 출발해 백련사를 거쳐 정상에 닿으려면 족히 대여섯 시간은 허벅지까지 푹푹 빠지는 눈밭에서 땀깨나 흘릴 것을 각오해야 한다. 그러나 무주 덕유산리조트의 곤돌라를 타고 오른다면 20분 남짓이면 정상인 향적봉에 닿게 된다.

설천봉에서 향적봉까지는 표고차 100m 완만한 산행길 날씨가 춥지만 않다면 어린아이들도 산행 할 수 있는 완만한 능선이다.


덕유산의 설경은 눈이 쌓여 이루는 ‘화려한 치장’만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다. 그곳에서는 ‘시간의 깊이’를 느낄 수 있다. 향적봉을 오르는 길에서, 중봉을 향하는 길에서 만나게 되는 수많은 고사목들은 스스로 지나온 시간을 증명한다. 살아서 1000년, 죽어서 1000년, 그리고 넘어져서 또 1000년의 시간을 보낸다는 주목의 나뭇결을 따라 하얗게 상고대가 피어났다. 산 나무든, 죽은 나무든 가릴 것 없이 한데 어울려서 순백의 세상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흰 입김을 뿜으며 그 순백의 장엄함 앞에 선다. 이런 순간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이 바로 겨울 덕유산을 오르는 가장 큰 이유이겠다.






덕유산의 구름과 안개는 예부터 유명했던 모양이다. 하기야 운무가 순식간에 주변 풍광을 가렸다가 토해 놓는, 천변만화의 모습 앞에서 누구든 감격하지 않을 수 있을까. 500여년 전 거창군 북상면 사람인 갈천 임훈. 그가 승려 혜옹과 함께 덕유산 향적봉을 올랐다. 그는 기행문 ‘등덕유산향적봉기’에서 “모든 산의 바깥과 안이 이곳에 있을 뿐”이라고 했다. 그러고는 “그 모양이 갑자기 변하는 것은 아름다운 구름이고, 멈추어 변하지 않는 것은 과연 산인데 하물며 그 이름과 지명을 다시 분별할 수 있겠는가”라고 썼다. 500년 뒤의 덕유산 풍광도 그의 말 그대로다. 눈꽃 핀 능선을 휙휙 지나는 구름들이 일대의 산을 가렸다가 토해 놓고, 다시 가렸다가를 반복한다. 

겨울 덕유산이 선사하는 아름다움은 눈꽃에만 있지 않다. 덕유산은 향적봉을 중심으로 해발고도 1300m를 넘나드는 거대한 능선을 이룬다. 이 능선이 남서 방향으로 무려 30여㎞가 넘는다. 능선을 딛고 서면 지리산을 위시한 일대의 산들이 다 건너다 보인다는데, 겨울의 매서운 칼바람이 몰고 다니는 운무는 이런 풍경들을 더욱 극적으로 만든다고 하는데,  이날은 뿌연 연무에 덕유평전의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기다리고 기다렸지만 중봉의 칼바람이 내려가라고 내 귀에 아우성을 친다. 

내려가라고. 오늘은 나의 모습을 보여줄 수 없다고.....




나뭇가지들은 겨우내 상고대를 피우며 ‘얼었다 녹았다’를 되풀이한다. 살은 얼고 피부는 트다 못해 얼어터진다. 그래도 얼음꽃을 피우고 또 피운다. 강원도 대관령고개의 황태들처럼 칼바람 속에서 묵언정진 동안거를 한다. 신음소리, 기침소리 한 번 없다. 

나무는 그렇게 얼음꽃을 수없이 피운 뒤에야, 비로소 새봄 황홀한 꽃을 피워 올린다. 붉은 철쭉꽃도 그렇게 올라온다. 노란 생강나무꽃도 그렇게 토해낸다. 매화나무 가지에 화르르 등불을 단다. 울컥울컥 붉은 진달래꽃을 매단다.


꼭대기에 가까워질수록 나뭇가지에 얼음 꽃이 피었다. 상고대(Air Hoar)이다. 철쭉 가지에 얼음꼬마전구가 덕지덕지 매달려 있다. 억새 쑥대머리에도 하얀 얼음 꽃이 다발로 피었다. ‘살아 천년, 죽어 천년’ 주목나무에도 주렁주렁 매달려 수정처럼 빛난다. 영락없는 크리스마스트리이다. 금방이라도 깜박깜박 전깃불이 들어올 것 같다. 

상고대는 나무서리이다. 나뭇가지에 매달린 물방울이 얼어붙은 것이다. 이슬 꽃, 눈물 꽃이다. 멍울멍울 은구슬 꽃이다. 한 줄기 겨울햇살에도 반짝반짝 번득이는 비수 꽃이다.

상제루로 돌아왔다.

다음 덕유산 설경여행에는 중봉에서 덕유평전으로 향하는 기나긴 능선을 볼 수 있을까?

산은 나에게 자신의 속살을 보여주리라 믿고싶다.


▶ 덕유산 가는 길 = 대전~통영간 고속도로를 타고 덕유산 나들목으로 나간 뒤 좌회전해 구천동 방향으로 치목터널을 지난다. 괴목리 사거리에서 우회전해 727번 지방도를 타고 무주리조트까지 간다. 무주리조트의 설천 리프트를 타면 설천봉까지 닿는다. 여기서 덕유산 정상인 향적봉까지는 20분이면 닿는다. 향적봉에서 중봉까지 이어지는 구간이 가장 설경이 아름답다. 눈꽃이나 상고대가 피어난 모습을 보려면 이른 아침에 올라야 한다. 곤돌라는 오전 9시부터 운행하는데, 좀 더 화려한 눈꽃을 보려면 전날 향적봉에 올라 대피소(063-322-1614)에서 숙박하면 된다.


▶ 어디서 묵고 무엇을 맛볼까 = 무주의 숙소라면 단연 무주 덕유산리조트를 첫손으로 꼽을 수 있다. 리조트 내의 티롤호텔은 덕유산의 자연과 이국적인 정취를 함께 느낄 수 있는 최고의 숙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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