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여주] 남한강 한눈에 굽어보는 천혜의 절경 파사산성
불가능한꿈 | 조회 20561 | 공감 1354


2009년도 여주 목아박물관에서 주최한 여주 토박이행사에 참여해서 알게되었던 여주 파사산성. 산성에서 보여준 남한강의 절경을 다시 보고 싶어서 여주 여강으로 향했다. 

파사산성 공영 주차장에서 산성까지는 600m 제법 경사가 있지만 천천히 걸으서 30분이면 족히 성에 닿을 수 있다. 이 땅의 수많은 산성에 비하면 얼마나 쉬운 길인가. 그러나 산이란 얕잡아보아서는 안 되는 법. 혼자 오르는 산길은 나뭇가지 밟는 소리에도 쉽게 놀란다. 도시생활에 익은 몸이 땀과 거친 숨을 가쁘게 내뱉는다. 마침내 소로를 덮은 잡목림이 끝나고 허물어진 석축이 보인다.





문화재청 홈페이지에는 파사성에 대해 이렇게 설명되어 있다. "성의 둘레는 약 1800m이고, 성벽 중 가장 높은 곳은 6.25m, 낮은 곳은 1.4m이다. 한강에 연하여 있어 성 일부는 강기슭에 돌출되게 자리 잡아 상·하류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요충을 이루고 있다. 당초에는 삼국시대의 것이었다고 여겨지는데, 그 후 수·개축을 거쳐 오늘에 이른 것이다. 현재 동문지(東門址)와 남문지(南門址)가 남아 있으며, 동문지에는 옹성문지(甕城門址)가 남아 있다. 임진왜란 때 승려 의암(義岩)이 승군을 모아 예성을 수축했던 것이 오늘날의 성으로 남아 있는 것이다."

파사성의 이름에는 두 가지 얘기가 따라붙는다. 하나는 옛날 이곳이 파사국(婆娑國) 자리였기 때문이라는 것, 또 하나는 신라 제5대 왕인 파사왕(재위 80~112)이 축성하여 그렇게 이름 지어졌다는 것. 파사성은 여러 번에 걸쳐 수축되어 현재의 모습을 갖추었다.





"일찍이 진흥왕(재위 540~576)은 553년에 경기도 지역을 점령하고 지방 군사행정조직인 10정의 하나로 골내근정(骨乃斤亭)을 이곳에 두었으며, 대규모의 석성을 쌓았다. 다시 그로부터 약 천 년 후, 1592년에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유성룡의 건의에 따라 승병장 의암이 승군을 동원하여 3년에 걸쳐 옹성과 장대, 군기소까지 갖춘 성으로 수축하였다. 지금은 산성 곳곳이 무너져 내렸지만 이 산성이 여러 시대에 걸쳐 쌓은 성임을 확인하기에는 어렵지 않다." <답사여행의 길잡이 7, 돌베개刊> 



장대에 오르면 여주, 이천, 양평 일대가 한눈에 들어온다. 남한강 상류와 하류 지역 교통로를 장악하기에 매우 유리한 지점이다. 파사산은 그리 높지 않지만 조망이나 방어선으로 볼 때 축성지로는 최적임을 알 수 있다. 다만 다른 성에 비해 물이 부족한 것이 흠이었다고 한다.




성은 현재 서북구간과 동북구간만이 복원되었다. 서북구간 성벽은 옛돌과 새돌을 섞어 쌓아 마치 체스판 무늬 같다. 아직 복원되지 않은 성벽들은 허물어진 모양 그대로 현재를 지탱하고 있었다. 원래의 것에서 많은 것을 잃은 모습들이다. 잃어버렸다는 것은 본래는 소유했음을 뜻하고, 소유했다는 것은 소유 가치가 있었다는 의미가 아니겠는가. 조선후기에 들어 남한산성에 대한 비중이 높아지면서 파사성에 대한 중요성은 감소하였고, 이제 그 용도는 사라졌지만, 석성은 여전히 과거의 존재 가치를 그 자리에서 스스로 지키고 있어 보였다.  




남문 앞 안내표지판에는 파사성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해온다고 적어 놓았다.

"신라5대 파사왕 때 남녀 두 장군이 내기를 하였다. 남장군은 나막신을 신고 중국을 다녀오고 여장군은 파사성을 쌓기로 하였는데, 여장군이 성을 다 쌓기 전에 남장군이 먼저 중국에서 돌아왔다. 여장군은 개군면 석장리까지 가서 돌을 치마폭에 담아오던 중 이 소식을 듣고 놀라 치마폭이 찢어지면서 돌이 떨어져서 그 마을에 돌담이 만들어졌고 그 때문에 파사성은 미완상태라고 한다."





사실이라고 믿을 만한 얘기는 아니지만, 이 전설에는 '온달과 여동생이 하루아침에 성을 쌓았다'는 온달산성 전설과 같은 묘한 매력이 있다. 적당히 과장된 이 두 전설에는 당시에 사회 활동을 넘어서, 군사적으로도 남녀 활동이 동등하였거나 적어도 여성의 활동이 활발했음을 간접적으로 말해준다. 



산성의 복원 작업은 방문한지 2년이 지났지만 제자리 걸음이다.

단지 하나 4대강 복원이라는 미명아래 여강가를 파헤치고 깨치고, 온통 속살을 드러내면서 흙탕물이 군데군데 모여 맑디맑던 남한강을 버려놓은 건축물이 흐르는 강을 막고 있다. 아름답던 강 길 곁에 억새와 갈대는 모두 흙더미와 함께 한 곳에 쌓여있겠지. 





성을 다 둘러보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그러나 책을 뒤적거리듯 성벽 안팎을 나갔다가 들었다가 살펴보는 재미가 있다. 무엇보다도 산정에서 내려다보는 남한강과 강이 이룬 벌판이 보기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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